이 남자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작이 그저 그런 날이었다. 아침 일찍 찾아오겠다는 의뢰인 탓에 이른 시간에 기상해 옷차림을 가다듬고 창가를 서성였지만 의뢰인은 해가 중천에 걸릴 즈음에서야 문을 두드렸다.

완성된 의뢰품을 보고도 괜한 트집을 잡기에 새로 작업을 해드릴테니 며칠 뒤 다시 찾아오시라고 말하곤 돌려보냈다. 의뢰품은 분명 의뢰대로 정확히 제작된것이었지만 실랑이를 해봐야 이쪽의 평판만 떨어질 뿐이라는걸 잘 알기에 한숨을 내쉬고 작업대에 앉으려던 참이었다.

다시 들려온 노크소리에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었을 때 눈에 들어온건 한 사내였다. 흰색의 머리칼이 건강하게 탄 피부와 대비되어보였다.

“활을 수리 할 수 있다고 하던데.”

먼저 입을 연 남자가 왠지 못마땅한 눈초리기에 그제서야 내가 미간에 힘을 준 채로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는걸 깨닫고 미안한 마음에 급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번 보여주시겠습니까.”

남자에게 건네받은 활은 어떤 충격이 가해진건지는 몰라도 살짝 비틀려있었다. 조정하는데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지만..  

“저녁에 찾으러 오실 수 있나요?”

남자는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악시피트린.”

장부에 이름을 적으려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인 것 같았다. 흔한 이름도 아니고 이 남자와는 초면일텐데. 초면인가? 돌아서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다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활의 휘어진 중심축을 손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았다. 최근 마을에서 몇번 스쳐지나가는 틈에 이름을 들었던걸까? 그 남자를 내가 알던가?

벗겨진 손톱이 붉은 핏방울과 함께 작업대에 떨어졌다. 인상이 찌푸려지는건 통증때문이 아니었다. 일할때에 집중이 깨지는 일은 좀처럼 없었는데…

순간 스쳐지나간 생각에 당황해 손가락을 베어버렸지만 상처에 붕대를 감으며 되짚어봐도 그 생각이 어떤것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음이 저려왔다. 

 해가 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자 낮의 차림 그대로의 남자가 서있었다. 수리를 마친 활을 내밀자 그의 시선이 붕대가 감긴 손에 꽂혔다.

“… 그 손.”

“이거요? 뭐, 며칠 지나면 낫겠죠.”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몇번 흔들어보였지만 상처입은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남자는 살짝 인상 쓴 얼굴로 활을 받아들곤 활시위를 허공에 한번 당겨본 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희 초면인가요?”

나도 모르게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에 남자는 어이없다는듯이 ‘오늘 낮에.’ 라고 짧게 대답했다.

“오늘 일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저희 이전에 만난적이 있던가요?”

남자가 순간 멈칫하는게 느껴졌지만 수리 대금을 지불하며 기분탓일거라고 말하곤 나가버렸다.

 다친 손가락이 작업의 완성도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속도는 늦추었다. 꼬박 나흘이 걸린 작업 끝에야 일전의 의뢰를 마칠 수 있었다. 이제 한숨 돌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빈잔에 과실주를 따랐다. 손의 상처는 그 사이에 어느정도 아물어서 왼손 전체를 덮었던 붕대는 풀어버렸지만 손톱이 덜자란 손가락은 이따금 욱신거렸다.

창가의 의자에 걸터앉아 술잔을 홀짝이며 창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그 남자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동료인듯한 사람들과 함께 편하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싶었다. 긴장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며칠동안 아무래도 신경쓰여서 사람들에게 물어 알게된 바로는 그는 사냥꾼이었으며 얼마전 용병단에 합류한 신입이라고 했다. 

흠, 신입이라고?

나는 술잔을 마저 비워버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 …창문으로 향하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기분탓이겠지.

남자가 울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간밤의 꿈이었는지 지난날의 기억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기억이 왜 갑자기 떠오른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그 장면과 함께 그때의 아릿한 감정만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남자를 다시 마주친건 로체스트 주점에서였다. 의뢰받은 장신구를 전달하고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주점의 구석진 자리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곤 그에게 다가가 옆자리에 앉았다.

“당신이었나.”

남자는 나를 확인하곤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 손의 상처는?”

“이젠 괜찮습니다. “

…정적이 흘렀다.

“저희 정말 초면인가요?”

내가 참지 못하고 되묻자 남자는 ‘이젠 아니지.’라고 퉁명스레 대답했다.

“당신은 저를 모른다고 해도 저는 당신을 알고있던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술잔을 들어올리던 남자의 손이 또다시 멈칫 했다. 무언가 말하려는듯 입술을 떼었다가 닫기를 수차례 반복하더니 이내 굳게 다물어버렸다. 그렇게 한동안 서로 한마디도 없이 술만 마시다가 먼저 술잔을 비운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콜헨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저 술잔을 비웠다.

 밖이 시끄러웠다. 용병단이 어디론가 출정을 나갔다가 돌아온 모양이었는데, 힘든 전투였는지 곳곳에 부상자가 보였다. 전에 남자와 대화하던 동료중 한명도 어딘가 다친듯 부축을 받으며 마을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에 그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 애써 고개를 저었다.

해가 지자 어수선했던 마을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밤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으려 창가에 다가서자 여관 옆 나무 아래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남자가 보였다.

“밖에서 그렇게 있을겁니까?”

잠옷바람으로 나온 내 모습을 보고는 남자는 또 당신이냐는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왜 여관으로 돌아가지 않나요?”

여관에서 지내고 있다고 들은것같은데.. 내 질문에 남자는 아주 작은 소리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마저도 빗방울 소리에 흐려져 제대로 들은건지 헷갈렸다. 

“그럼 제 집에서 비라도 피하시죠.”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그런 그를 슬쩍 흘겨보곤 옆에 같이 주저앉아버렸다. 

“뭐하는건가?”

“당신이 비를 피할 때까지 저도 여기 있을겁니다.”

“쓸데없는 짓을. 어서 들어가지 않고.”

“제가 왜 들어가야하죠?”

“그야…”

그에 이어지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남자는 못이기겠다는듯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이 편하진 않겠지만 밖에서 감기걸리는것보단 낫겠죠.”

벽난로 앞에서 주무시라고 담요를 건네며 말하니 상관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2층으로 올라와 침대에 누워서도 한참동안 잠들지 못했다. 얼마나 뒤척인건지 밖은 아직도 칠흑같았고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잠이 올까 싶어 계단을 내려가니 테이블에 앉아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 주무시나요?”

“… 원래 잠이 별로 없어서.”

내가 내려오는 소리를 듣고있었는지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찬장에서 포도주 한병과 술잔을 꺼내와 옆자리에 앉았다.

“술이라도 한잔 하시겠어요?”

내미는 술잔을 남자는 말없이 받아들었다.

“다친 동료는 좀 괜찮은가요?”

서로 술잔만 주고받다 처음 말을 걸었는데 그의 표정이 즉시 굳어져 내가 주제를 잘못 꺼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술잔을 든 손이 가늘게 떨리는것 처럼 보였는데 벽난로의 불꽃이 일렁이는 탓인지 잘못 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 내 손에 다쳤어.”

괜한 얘기를 한것같아 사과하는데 좀처럼 말을 않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동료에게 덤벼드는 적을 노린 화살이 동료의 팔을 꿰뚫었다고 했다. 혼전중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자는 심하게 동요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료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 여관방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남자의 모습을 본적이 있다. 감정에 복받쳐 덜덜 떠는 모습. 그 모습을 보고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남자는 남은 술을 들이키더니 이마를 짚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당신이 울고있는걸 봤습니다. 비가 오던 날에.”

줄곧 입안에서 맴돌던 말을 꺼내버렸다. 내 욕심에. 이번에도 내보이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그가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 이 감정을 당신에게 느끼는게 처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말이 없었다. 이 남자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갑자기 이런 말로 불편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전 올라갈 테니 날이 밝을 때까지는 비를 피하다 가시죠.”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심장이 욱신거렸다. 자리에 굳어있는 남자를 뒤로 한 채 침실로 올라와 애써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창밖의 빗소리만 커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