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장식된 흰 백합과 장미의 은은한 향이 왠지 마음을 들뜨게했다

간만에 제대로 차려입은 정장 차림이 스스로 어색하게 느껴졌다. 식장이 가까워질수록 어수선한 분위기에 긴장되어 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낯선 하객들이 저마다 들뜬 얼굴로 제 일행과 대화를 주고받고있었다. 다행히 늦은 것 같지는 않은데. 곧 식이 열릴 교외의 성당은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서른명 남짓 모인 하객을 수용하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곳곳에 장식된 흰 백합과 장미의 은은한 향이 왠지 마음을 들뜨게했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자 익숙한 잿빛의 머릿칼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턱시도를 차려입은 청년의 재킷에는 특이하게도 녹색의 꽃이 장식된 부토니에가 꽂혀있었다.

“아, 오셨네요! 못오시는걸까 했는데.”

피츠가 살갑게 인사해왔다. 언제나와 같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미소를 띄운채였지만 조금 긴장한 기색이 느껴졌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아직 시작도 안했는걸요.”

조금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정신없을 시간에 도착한것이 미안해 사과하자 피츠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저 이제 가봐야해서요, 아마 저쪽에 앉으시면 될거에요.”

그가 가리킨 쪽에 이미 자리를 잡고 앉은 하객들 사이로 빈자리가 보였다. 얼른 가보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이따 봐요!’ 하곤 서둘러 사라져갔다.

모두가 식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옆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식장에서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실례합니다.”

들떠서 재잘대는 아가씨 둘과 낯선 남자 사이에 비어있는 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옆자리의 남자는 짧은 백발에 건장한 체격으로,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는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선지 약간 긴장한것 같기도 했다. 소란스런 가운데서 이어지는 침묵에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그쪽도 혼자 오셨나요?”

먼저 말을 건네니 남자가 슬쩍 쳐다보더니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원래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인가보네. 때마침 앞쪽에서 곧 식이 시작될거라는 말이 들려와 이내 고개를 단상으로 돌렸다.

식은 순조로웠다. 혹스턴, 피츠의 연인은 그와 대조되는 검은 턱시도 차림에 포켓에는 살짝 올리브빛이 도는 잿빛 꽃을 장식한 부토니에가 꽂혀있었다. 사회자와 주례가 식을 진행하는 말들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둘은 진심으로 행복해보였다. 둘 사이에서 느껴지는 행복감이 마음을 간질여왔다. 서로 반지를 끼워주고, 입을 맞추는 순간에는 모든 하객들이 약속한듯 일제히 박수를 쳐주었다. 아니, 모든 하객들은 아닌것 같다. 아까부터 쥐죽은듯 조용한 옆자리 남자에게 살짝 눈을 돌렸는데 그의 청록빛 눈동자와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줄곧 나를 보고있었던건가? 왠지 어색한 기운이 한층 더 짙어지는 것 같다고 느낄 때 쯤 남자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본 식이 끝나고 야외에서는 피로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곳곳에 설치되고있는 테이블 근처를 서성이고 있으니 피츠가 양손에 샴페인이 담긴 잔을 들고 다가와 한잔을 건네며 말했다.

“아깐 인사를 제대로 못했죠.”

“아니에요, 제가 더 일찍왔어야 하는데. 결혼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아, 정말 정신이 없네요.”

피츠는 간신히 숨 돌렸다는듯 샴페인을 한모금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피로연에도 계실거에요?”

“글쎄요, 더 있고 싶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그냥 갈까 싶기도 하고요.”

“이참에 발을 넓혀보시는건 어때요?”

“다들 일행하고 어울리느라 바쁜것같고.. 옆자리 남자는 무뚝뚝하고요.”

“아.. 동행인 없이 온건 두분 뿐이라서 자리가 그렇게 됐네요.”

피츠가 머쓱하게 웃어보였다. 청첩장을 받을 때에 혹시 동행인이 있냐고 미리 질문 받았지만 결혼식에 데려올만한 사람이 있을리 없었다. 

“말수는 적어도 좋은 분이에요.”

“하하.. 노력은 해볼게요.”

다른 지인에게 인사를 하러 간 피츠를 뒤로 하고 자리를 찾아 둘러보니 좀 떨어진 테이블에 아까 그 남자가 혼자 앉아있는것이 보였다.

“아직 계셨네요.”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걸었지만 남자는 이번에도 대답은 하지 않고 잠깐 쳐다보더니 이내 앞에 놓인 샴페인 잔으로 시선을 떨궜다. 근처에서 악단이 연주를 시작하려는듯 부산하게 움직였다.

“예?”

남자가 무언가 말한것같은데 주변 소음에 잘 들리지 않았다. 남자쪽으로 몸을 기울이니 다시 입을 열었다.

“무뚝뚝한 사람은 싫어하나?”

“아…”

아까 피츠와 대화하는걸 들었나보다.

“나쁜 뜻으로 말한건 아니었어요. 미안합니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하고 말 끝을 흐리는 남자의 얼굴이 묘하게 붉어져있었다. 눈치없이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안했네요.
저는 람베르티라고 합니다.”

남자의 눈가에 작은 웃음이 서렸다.

“악시피트린이다.”